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스 요리 (문단 편집) == 프랑스 요리의 역사 == [[프랑스]]의 선주민족인 [[켈트]]계 [[갈리아]]족의 음식문화로 시작하였다. 갈리아족의 음식문화는 의외로 투박했다. 기본적으로 수렵으로 식생활을 해결하던 그들은 직화구이를 선호했다. 그 다음에 들어온 이주민들도 그대로 갈리아족의 조리법을 따라 갔다.[* 뿌리 자체는 [[영국 요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도 [[게르만족]]이나 [[라틴]]인이 도래하기 전에는 [[켈트]] 계열 민족이 주류였다.] 후에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갈리아 지방이 복속당하고, 현대 [[프랑스인]]의 조상인 [[라틴|라틴족]]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로마 군단병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대적인 육우의 방목이 이뤄진다. 더불어 로마에 의한 문명화가 진행되어 대규모 농장이 운영되어 점점 식재료가 다채로워지기 시작한다. 주식이 곡물이 된 것도 이 시기이다. 로마가 멸망한 후 프랑크족이 갈리아 지방을 점령하면서 [[게르만]]식 음식 문화가 더해지고, 후추 등 동방의 향신료도 접하게 되어 '향신료 먹으려고 고기 굽는' 중세식 요리의 기본바탕이 완성되었다. 14세기부터 싱크대와 작업대의 구분 및 소스의 사용이 시작되어 연회도 화려해졌지만, 16세기 초반까지는 [[서유럽]]의 다른 나라들의 요리와 큰 차이점이 없었다. 프랑스 요리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는 16세기 중반 이후인데, 1533년에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가 오를레앙 공작, 즉 후일의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이탈리아]]의 고급 식문화를 들여오면서 프랑스 요리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무역으로 부를 축적해서 유럽에서 가장 사람꼴 갖추고 살던 곳이었고, 음식문화 또한 활발한 교류로 매우 발달해 있었다. 특히 [[피렌체]]를 지배했던 메디치 가문에서 시집온 만큼 감각이 남달랐다. 이렇게 발달하기 시작한 프랑스 요리는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고 귀족문화가 발달하면서 더더욱 발전하는데, 17세기 중반 이후로는 식도락에 관심이 많아 직접 [[요리]]를 만드는 귀족들도 역사에 다수 등장하고, 대귀족의 [[요리사]]들은 지금까지 남아 전해 내려오는 요리책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서로 누가 더 호화로운 요리를 만드느냐 하는 허세배틀이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식재료를 물로 삶는 요리법이 음식의 질을 떨어뜨리고 양을 늘리려 드는 저급한 짓거리라며 퇴출된 것도 바로 이 시기. 이때 요리 발달은 근본적으로 상류층 요리에 한했기 때문에 각 지방에서 먹는 요리는 여전히 투박한 면이 많았다. 물에 넣어서 요리 하는 것을 서민의 방식으로 봤다. 이후 [[길드]]의 해체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황실 및 황족들&귀족들이 처형당하거나 쫓겨나자 일자리를 잃은 [[요리사]]들이 형편에 따라 [[포장마차#s-2|가판대]]나 [[레스토랑]] 등을 개업하여 상류층이 즐기던 [[요리]]를 시민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미식문화의 발달에 기여했다. 레스토랑의 개업 자체는 대혁명 이전인 1765년에 최초로 일어난 일이지만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기존의 주점 등을 밀어내고 요리계의 중심이 된 것은 대혁명이 계기였다. 유명한 요리사들은 신흥 귀족이나 [[부르주아]]들에게 고용되어 [[요리]] 문화를 계속해서 발전시켰고, 이들이 경력과 자본을 쌓아 독립하여 직접 [[레스토랑]]을 개업하기도 하였다. [[프랑스]]의 고전 요리는 19세기에 [[마리 앙투안 카렘|앙투안 드 카렘]]에 의해 극치에 달했다. 또한 외국으로 망명한 프랑스 황족들과 귀족들은 프랑스 요리가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요리사 1: 더 이상 아무도 비싼 고급 요리를 먹을 사람이 없다! >요리사 2: 그런 요리만 다루는 우리를 고용할 사람이 더는 없어! >요리사 1: 이제 우린 굶어 죽는 건가? >요리사 2: 자존심이 있지, 싸구려 요리는 못한다... >요리사 1: 우리 황실 요리를 제공하는 식당을 열어볼까? 돈 받고 궁중, 귀족 요리를 일반에게 팔아 보잔 말야! >요리사 2: 미쳤어? 그렇게 비싼 요리를 누가 먹어? >요리사 1: 그렇지 않아! 맛있는 요리를 마다할 사람 없고 돈 많은 부르주아들이 득세하는 세상이니까...[* 여담으로 실제 만화에서 바로 이전 대사와 이 대사는 요리사 1과 2가 바뀌어서 말한다. 즉, 요리사 1이 궁중 요리 식당을 열자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곧바로 본인이 그렇게 비싼 요리를 누가 먹냐며 놀라는 웃기는 장면이 되는 것.] >요리사 2: .......... >요리사 1: 신분이 낮은 부르주아들이 황제와 귀족 행세 해보고 싶어서 궁중 요리 먹으러 몰려들걸! >---- >'''《[[먼나라 이웃나라]] - 프랑스편》'''에서 혁명으로 일자리를 잃은 궁중 요리사들의 대사 [[19세기]]에는 [[러시아 요리]]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발전했다. 프랑스 요리의 고급화에 박차를 가한 코스 요리라는 개념은, 추운 [[러시아]]에서 음식이 식지 않도록 음식을 한 번에 한 가지씩 내던 것을 [[프랑스]]에 도입한 것이다. 그 전에는 [[한국 요리]]처럼 한상 거나하게 차려먹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가정식 요리를 제공한다는 뜻인 '비스트로'도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 [[파리(프랑스)|파리]]를 점령한 [[러시아군]]이 음식을 주문하고 [[러시아어]]로 "[[빨리빨리]]! (Быстрее!)"라고 외치던 것이 그 유래다. 또한 [[튀르크리]]의 영향으로 [[튀르키예 요리]]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오스만 제국 궁정의 식사는 기본적으로 애피타이저(터키어로 메제)가 나오고, 그 뒤로 가금류, 육고기, 생선, 샐러드, 후식, 마지막으로 [[튀르키예 커피]]와 [[담배]] 및 다과류를 대접했는데, 이 또한 프랑스식 코스요리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1960년대에는 nouvelle cuisine([[누벨 퀴진]])이라는 사조를 형성하면서 음식 비평가를 거쳐 전 세계적으로 대중화 되었다. 버터와 소스를 듬뿍 넣던 종래의 무거운 [[오트 퀴진]]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가볍게 변화한 것이 누벨 퀴진이다. 누벨 퀴진을 두고 이탈리아인들은 프랑스인들이 드디어 문명으로 회귀한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누벨 퀴진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장식에 너무 치중하여 음식으로 장난치냐는 비판도 있다. 80년대 중반에 그 요리 스타일은 한계에 도달했고, 여러 요리 기술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많은 요리사들은 고전 스타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기에 누벨 퀴진의 장점은 장점대로 받아들이면서 고전 레시피와의 조화를 연구하는 '퀴진 모데른'(cuisine moderne)이라는 형식이 나오고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기존의 중심 소스였던 버터와 크림의 중요성을 다시 살펴보면서, 고전과 새로움을 조화시키는 것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런 흐름을 실력있는 쉐프인 '조엘 로부숑', '아랑 듀카스', '피에르 가니에르' 등이 이끌고 있다. 식재료 분야에서도 상당한 강세인데, 대표적으로 [[지리적 표시제/유럽연합]]에서 219가지 품목을 등록 성공한 2위 국가다. 자세한 것은 [[지리적 표시제/유럽연합/프랑스]] 문서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